본문 바로가기
시뉴레터/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나의 디지몬어드벤처 이야기

by 아주작은행성 2023. 2. 11.

설레는 이 마음은 뭘까, 왠지 잠을 이룰 수가 없어

 

디지몬 어드벤처는 2000년 11월 7일부터 2001년 5월 14일까지 KBS에서 방영된 애니메이션이다. 컴퓨터 속 디지털세계라는 또 다른 세계가 있고, 선택받은 8명의 아이들이 자신의 파트너 디지몬과 함께 미지의 세계인 디지털 세상을 모험한다는 내용의 모험물이었다. 당시 내 나이는 9살, 디지몬 어드밴처에 등장하는 선택받은 아이들과 비슷한 연령층의 아이였다. 개인 가정에 컴퓨터라는 것이 보급화되던 시기에 컴퓨터 안에 새로운 세계가 있다고 말하는 이 만화는 나에게 환상을 심어주었다. 나는 0과 1의 디지털 세상에 빠져들었고 이후 컴퓨터는 나에게 나니아 연대기의 옷장이자, 호그와트로 갈 수 있는 9와 3/4 플랫폼이었다. 디지몬 어드벤처는 다른 세상으로 모험을 떠나는 입구이자 힘든 현실을 잊게 만드는 출구였다.

 


선택받은 아이들은 각자가 지닌 가장 강한 마음, 가장 따뜻한 마음의 발현을 통해 파트너 디지몬을 진화시킨다. 용기, 우정, 사랑, 순수, 지식, 성실, 빛, 희망.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강한 마음의 발현은 세상을 구하고 자기 자신을 나아가게 만든다. 무엇보다 디지몬 어드벤처가 좋았던 것은 그 마음의 발현이 지속적이지 않고, 끊임없이 가져야 하는 마음으로 보여줬다.


디지몬 어드벤처에서 진화라는 것은 선택받은 아이들의 마음의 발현을 통해 나타나고, 파트너 디지몬은 싸움이 끝나면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작 중의 한 에피소드로 태일이의 잘못된 용기가 파트너 디지몬을 괴롭게 하여 올바르지 않은 형태의 진화를 일으키는 에피소드가 있다. 태일은 잘못된 형태로 진화한 파트너 디지몬을 보며 자신의 잘못된 용기가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의 가장 강한 마음인 용기를 잃어버린 태일은 한동안 파트너 디지몬을 진화시키지 못한다. 그러나 본인이 죽을지도 모르는 순간,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용기를 내는 태일의 마음에 용기의 문장은 다시 한 번 빛이 난다. 이밖에도 진실한 마음이 없어 진화되지 않는다든지, 파트너 디지몬과 사이가 좋지 않아 진화되지 않는 등의 상황이 발생한다. 디지몬 어드벤처는 진화를 통해 진실한 마음의 발현은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아직까지 쓰러지지 않았다면 할 수 있어

한숨은 패배의 몫인거야, 너는 다르잖아

그 누구도 대신 못 할 너의 일이야

푸르른 이 별과 또 다른 세상까지도 지켜줘

날아라 높은 바람이 불 때

대답해 꿈이 너를 부를 때

모든 게 너의 마음에 달려있어

때로는 너도 잊고 있지만

너는 충분히 강하단걸

너의 맘속에 잠들어 있던

용기를 보여줘

Show me your brave heart

- 디지몬 어드벤쳐 OST / brave heart -


디지몬을 보고 자라며 10대의 끝자락이 되었고 진로의 갈림길이 찾아왔다. 용기와 사랑, 우정과 순수와 같은 먼나라 이웃나라의 감정을 보고 자라서일까. 국어과 영어, 사회와 과학, 수학과 회계 속 세상에 내가 가진 능력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해본 것이라고는 연극과 성우 성대모사뿐인, 더 이상 옷장을 드나들 수 없는 고등학생은 표지판이 없는 들판에 서 있었다. 능력의 발현이 필요한 순간에도 내 마음을 울리는 건 디지몬이 남기고 간 마음의 발현이었다.

나의 문장은 ‘성실’이었다. 성실의 문장을 따라 내가 가장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길을 떠났다.


아무것도 모르고 깊이 잠들어 있는

날 깨우는 너의 목소리

짙은 어둠을 밝혀줄 한 줄기 빛

날 비춰줘

내 맘속에 자라는 꿈이라는 이름의 알 수 없는 나의 미래를

이젠 깨워줘 어른이 돼가는 날 지켜봐 줘

내게 더 용기를 준다면 다시 시작할 수가 있어

당당하게 새로 태어날 내가 있어

잊지마 너와 나 이젠 할 수 있어 기회는 지금뿐이야

언제나 기억해 기다리고 있어 끝까지 날 지켜봐줘

Give me a way

- 디지몬 어드벤쳐 02 OST / 날 지켜줘 -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 돈을 번다.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하던 소년은 이제 자신은 어느 곳을 가더라도 어린이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나이가 든 청년은 알게 되었다. 디지몬은 만화일 뿐이라는 것을, 나니아와 호그와트는 소설 속 공간이며 내가 살아가고 있는 공간은 현실이라는 것을,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곳이 나의 현실임을 안다. 직장 상사가 뱉는 쓴소리에 기분이 우울해진다. 그래도 나는 일을 한다. 꿈이라는 것과 현실이라는 것을 구분할 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새까만 방에 하얀 모니터를 보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소년은 불이 다 켜진 회사에서 하얀 모니터를 바라본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뭐가 달라진 걸까. 어릴 적 나타났던 마음의 발현은 어디로 갔으며 나의 파트너 디지몬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래 그리 쉽지는 않겠지

나를 허락해준 세상이란

손쉽게 다가오는

편하고도 감미로운 공간이 아냐

그래도 날아오를거야

작은 날갯짓에 꿈을 담아

조금만 기다려봐

oh my love

나비처럼 날아가 볼까

일렁거리는 바람에 실려

이런 느낌을 언제나 느낄 수 있을까

마음속을 좁혀 오는 사소한 일은 신경쓰지마

지금 이대로 날아가 모두 잊으면 돼

어떻게 워워워워워

하늘 끝까지 닿을 수 있을까

이렇게 워워워워워

여린 날개가 힘을 낼 수 있을까

- 디지몬 어드벤쳐 01 OP / butterfly -


철야를 마치고 아무도 없는 새까만 방으로 돌아왔다. 씻고 누우니 출근은 5시간 전.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난다. 노래를 틀어놓은 모니터에서 '안녕 디지몬'이 들린다. 어릴 적 바라봤던 하얀 모니터. 저 모니터 속 잠들어 있는 나의 디지몬은 잘 살고 있을까? 혹시나 나를 그리워하고 있지는 않을까?

갑자기 가슴이 설렌다.

왠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오늘 밤은 나의 디지몬을 보러 가야겠다.


설레는 이 마음은 뭘까

왠지 잠을 이룰 수가 없어

혹시 꿈을 꾸고 있는지

나는 몰라

내가 있는 곳 여기가 어딘지

언제부터 시작되어 온 건지

아무도 내게 말 안 해

가르쳐 주지 않아

눈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이

너무나 작다는 걸 알았어

바람에 실려 온

세상 저편에

소식들 궁금해

안녕 디지몬

네 꿈을 꾸면서 잠이 들래

안녕 디지몬

친구들 모두 안녕

안녕 디지몬

너와 함께하고 싶어

안녕 디지몬

난 너를 찾아갈래

어디선가 넌 가만히 다가와

나의 손을 잡아 줄 것 같아

미지의 세상 그곳에

나를 데려가 줘

조용히 눈을 감고 있으면

저 파란 하늘 높이 날아가

모두가 꿈꾸던

환한 세상이 보이는 것 같아

안녕 디지몬

네 꿈을 꾸면서 잠이 들래

안녕 디지몬

친구들 모두 안녕

안녕 디지몬

너와 함께 하고 싶어

안녕 디지몬

난 너를 찾아갈래

- 디지몬 어드벤처 ED / 안녕 디지몬 -

SMALL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