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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책메모]

책 읽기 독후감 : 나는 매번 시쓰기가 재미있다

by 아주작은행성 2021. 7. 26.

김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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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8 : 남 글을 안 읽으면 글이 뭔지 잘 모르겠는데 남 글을 읽으면 내 글이 엉망진창이 됐다. 어떻게 극복했냐고? 여기 무슨 극복이 있을까? 어차피 우리는 다른 사람이 이미 쓴 것을 가져다 쓰는 사람이다. 그걸 인정하고 시작하면 된다.

P.21 : 우리는 언제나 특정 시대를 애도한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우리가 어떻게 울고 있는지만 보여 줄 수 있다. 당신은 무엇을 애도하는가? 어떤 방식으로 하는가? 거기서 출발하면 좋겠다. 당신만의 방식을 알아내라고 닦달하고 싶진 않다. 당신은 남들의 문장을 빌려다가 쓰고 있을 뿐이니까 당신만의 방식이란 원체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결국 당신의 시는 당신이 아니라 당신의 몸부림이다. 시는 당신이 아니라 당신의 흔적이다.

물이 다 빠진 뻘처럼. 쓰나미가 휩쓸고 간 후쿠시마처럼. 물이 다 빠진 웅덩이처럼. 바짝 마른 모래처럼. 이런 표현들은 시에 쓰지 말아야지. 이런 표현들은 몸부림이 아니니까. 그냥 표현이니까.

P.23 : 무엇이든 설명하다 보면 내가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을 설명하고 있는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이다. 내 시가 시가 되는 순간은.

(중략) 그러다 보면 내가 할 수 없었던 말을 하게 되는데, 그러면 다시 처음부터 쓴다. 할 수 없었던 말이란 사실 없다. 할 수 있었던 말이고 해 왔던 말이다. 그냥 지금 당장 이걸 쓰면서, 시라는 이상한 단어 때문에 갑자기 까먹었던 것들, 망각했던 것들을 애도한다. 어렴풋이 뭔가가 기억나면 다시 거기서 처음부터 쓴다.

P.24 : 나는 잠을 많이 잔다. 시를 쓸 때는 무조건 잠을 많이 잔다. 잠으로 생각을 끊는다. 그럼 내가 쓰고 있는 것이 시가 아니라 생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생각은 시가 아니다. 시는 생각이 끝난 곳에서 시작되는 생각이다. 자고 일어나서 갑자기 내 나이가 떠오르지 않을 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누군지 까먹었을 때,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다. 다시 서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다시 할 수는 없다. 왜 쓰냐고? 아무것도 다시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 쓴다. 그러면 슬프지 않다. 슬프지가 않다. 아, 기쁘다. 언제까지 이렇게 기쁠 수 있을까. 아무것도 다시 할 수 없는데. 점점 모든 것이 다시 하는 것들 뿐인 것 같다.

P.30 : 매일 무언가를 끝내고 살아가는 것이다. 다시 시작하기도 하는 것이고. 그러면 관계의 모양을 알게 되지. 그 모양이 시에서는 형식이라고 불리는 것 같다. 단순희 사랑의 정열 같은 것을 시에 그대로 옮기고 싶다는 생각은 이제 하지 않는다.

P.31 : 사람들이 알아서 추천을 해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추천하는 음악을 듣는다. 그래서 친구를 사귈 때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 것이다.

P.33 : 시를 쓸 때만 시인이라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당신이 섹스 중독자라면 당신 섹스를 멋지게 포장하기 위해서 시를 쓰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내 섹스를 좋아하지만 네 섹스는 좋아하지 않는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네 성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성기 징그럽게 생기지 않았나? 멋있게 포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렇다고 괜히 찌질 감성파가 되어 글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나는 당신이 멋있게 포장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포장하지 않아도 멋있는 건 멋있으니까. 사실 멋있을 필요도 없으니까.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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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5 : 저는 여전히 책을 읽는 다는 이유로 잠을 설치진 않지만 쓴다는 이유로 잠을 미뤄 두기는 합니다. 무섭습니다. 자루에 담긴 것이 모두 동날까 봐요.

P.47 : 혼자가 되는 순간 옵니다. 걷잡을 수 없는 순간이지요. 사람들이 많은 가운데에도 불현듯 혼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P.50 : 시를 쓰듯이 쓰고 시를 쓰지 않는 것처럼 씁니다. 사진을 찍는 듯이 쓰고 영화를 연출하듯이 쓰고 그림을 그리듯이 쓰고 작곡을 하듯이 씁니다. 어떤 구도를 쓸까 어떤 광을 이용할까 어떤 미장센을 만들 것인가 어떤 연기를 시킬 것인가 어떤 색을 쓸 것인가 어떤 각을 넣을 것인가 어떤 악기로 연주하도록 할 것인가 생각하며 씁니다. 그러나 한 가지 반드시 공을 염두에 둡니다. 비어 있는 화면, 비어 있는 색, 비어 있는 소리, 비어 있는 문맥. 그러니까 독자가 바라보게, 무색하게, 경청하게, 침묵하게 두기. 최근에는 시의 시간에 빈 곳 두기를 좋아합니다.

P.61 : 저는 여전히 그 사람의 현재를 살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기억의 대상이 아닙니다.

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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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8 : 타인의 작품에서 장점을 발견하는 순간 내 작품의 단점이 보였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여전히 알지 못했지만 적어도 쓰지 말아야 할 것은 알 수 있었다.

P.131 : 사랑할 때 우리는 조금이라도 상대를 더 알고 싶어 한다. 그렇게 하나하나를 알게 되어 이제 다 알겠다 싶을 때, 모르는 구석들이 생긴다. 당연한 일이다. 이것은 나의 세계 속에서 자라는 상대가 점점 울창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아니, 내가 상대의 세계로 더 깊이 걸어 들어왔다는 뜻이다. 이세계에서 공간은 늘 광장처럼 드넓다. 이 광장에서 우리는 만나고 길을 잃고 다시 만났다가 헤어진다.

송승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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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73 : 시를 쓰다 보면 하나의 기획, 또는 하나의 습관 따위가 완료되는 시기가 온다. 뭐라고 부르든 거기에 머물러 있으면 괜찮은 걸 써내기가 힘들다. 그럴싸하게 만드는 것은 쉬워지지만, 좋은지 어떤지 잘 모르겠는 것을 만들기가 어려워진다는 말이다. 본인의 인지 바깥에 있을 만한 것을 쓰기 위해서는 결국 그때까지의 기획을, 습관을, 세계를 버리고 좋을지 어떨지 모르는 것들을 쓰러 가야 한다.

P.175 : 생각이라는 피를 뽑아내고 싶어서 그런 것 같다. 머릿속에서만 맴돌고 있는 생각은 마치 고여 있는 죽은 피처럼 느껴져서 그대로 두면 어쩐지 견디기 힘들다. 누가 읽든 말든 일단은 머릿속에서 뽑아내야 좀 상쾌해지는 것이다. 물론 생각을 그대로 뽑아내면 그건 그냥 생각일 뿐이지만

P.179 : 사전에 보면 독자는 간객이라는 단어와 의미가 유사하다고 되어 있다. 간객은 보는 자, 독자라는 뜻과 구경꾼이라는 뜻을 함께 가지고 있어 흥미롭다. 시인이 문학 장을 무대로 삼는 퍼포머와 같은 성향이 있다는 점에 기대어 생각해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P180. : 시집을 읽는 행위란 무엇인가? 시집 독서는 일반적인 독서와는 성격이 조금 다른 것 같다. 내용이 궁금해서 읽거나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읽기보단, 그래, 네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써 놨는지, 어떤 단어와 문장을 전시해 놨는지 한 번 보자 하는 느낌이랄까, 때문에 시집을 독서할 때는 책을 읽는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고 ‘보기’나 ‘듣기’에 조금 더 가까운 행위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P.188 : 영화를 싫어한다. 보고 나면 피곤하기 때문이다. 일단 시각적인 요소가 많은 게 피곤하고, 게다가 소리까지 크다. 집중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시간도 제법 긴 편이다. 읽다가 피곤해지면 언제라도 덮을 수 있는 책과는 달리 영화는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보거나, 포기하고 극장을 나와야 한다. 컴퓨터로 언제라도 볼 수 있지 않느냐고? 그건 또 보는 맛이 안 산다. 작은 화면으로 보거나, 지루한 부분을 대충 스킵하면서 보면 제대로 본 것 같지도 않은 게 영화이니, 어쨌든 영화는 피곤한 장르임에 틀림없다.

안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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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10 : 하루는 지하철을 탔는데 좌석에 앉은 7명의 사람이 전부 검은 옷을 입고 있는 거에요, 저승사자들처럼. 한겨울이라서 외투도 다 두툼했거든요. 인간의 육체가 비정상적으로 비대해 보였죠. 지하철이라는 공간이 주는 상징성(어딘가로 나를 실어 나르고 있다는, 덜컹거림이 존재하는)과 저 검은 색채가 전해 주는 오묘한 느낌(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죽음에 가까운)이 얽혀 들면서 순간 현실 감각이 휘발되더라고요. 물론 그 장면을 시로 쓰지는 않았지만, 죽음 이후에 대한 상상을 하면 당시의 감각이 자연스럽게 소환될 때가 있었어요.

유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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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30 : 신발 끈을 묶는다. 운동화 매듭을 고친다. 두 문장이 데리고 오는 이미지가 전혀 다르다는 것이 재미있다. 같은 현상을 보고 발화된 언어라 하더라도 각각 다른 사물의 모양과 상태를 떠올리게 한다.

P.232 : 시는 단어 하나에도 기분이 요동치는 사람들을 풀어놓기에 적당한 장소라고 생각한다. 모과라고 적어 놓고 빛깔과 상태가 다 다른 모과들을 떠올려 보는 하루 종일, 머물기 좋은 장소다.

P.233 : 나에게 와서 비밀스럽게 부딪히는 언어와 장면들이 있다. 외면하고 살 수 없으므로 시에 쓴다. 첫인상을 살리려고 노력하면서.

P.240 : 앞뒤 이미지의 연결, 행간의 너비가 원하는 대로 나왔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 멀리서 손 흔들며 다가오는 사람이 가장 신비해 보이는 거리다. 방에 새로운 가재도구를 들일 때 어디에 두어야 가장 보기에 좋고 쓰기에 편리한지 고민하는데, 마음에 드는 배치를 완성했을 때의 기분이다. 같은 방에 살다 보면 당연한 것이 되고, 나는 또다시 새로운 배치를 고민하게 되겠지.

황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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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99 : 굳이 시가 어디선가 온다면 쌓아 둔 메모에서 온다. 최대한 많은 텍스트를, 그보다 더 많은 경험을 머릿속에 기억해 둬야 한다. 아주 사소한 순간들, 인상 깊게 읽은 책의 구절, 누군가의 생각 등을 틈틈이 기록하고 기억할 뿐이다. 많은 재료들을 조율하고 다시 구성함으로써 시는 이루어지는 것이다.

P.300 : 중요한 것은 시를 추동하고 연속시키는 시인의 의지에 있는 것이다. 단 한 편의 시는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한다. 진정 의미 있는 시가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편들과 다수의 시집들로 구성되는 시인의 궤적이 완성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시는 목표가 아니며, 시는 과정이다. 시는 한 명의 시인이 시에 대한 견해를 완성시키는 위해 활용하는 도구이며, 시의 새로운 영역을 창출해 내는 여정 그 자체인 것이다.

P.302 : 시는 과거가 없고 미래가 없다. 시에는 중심이 없기에 시는 어떤 것도 관통하지 않는다. 시의 시간은 언제나 현재이며, 시의 자리는 언제나 표면을 떠돈다. 시는 과거와 미래의 상을 현재 시점으로 왜곡하여 구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 현재는 물론 ‘나’의 현재이다. 시는 매우 극단적인 1인칭 장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P.303 : 그러나 ‘세계’는 존재한다. 망상이자 착각으로서 존재한다. 망상과 착각이 시인의 개성이며 태도가 되는 것이다. 시인은 자기 멋대로 왜곡하고 망가트린 세계를 통과하여 시를 제출한다. 다시 말하면 세계란 인식의 결과가 아니라 소망의 산출이다. 시인이 표현하는 세계란 시인 자신이 인지하고 감각하는 세계를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다. 인지하고 감각한 것을 서술하는 것은 과학의 소임이다. 시인은 ‘자신’이 인지하고 감각한 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욕망을 다시 거기에 투사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시인은 세계와 대결한다. 시인 자신의 소망은 자신이 발붙인 현실에 투사될 수 없음을 알기에, 그것이 망상이며 착각임을 알기에(혹은 모르기에), 시인은 자신의 세계를 정교화하며 극단화 한다. 그러한 싸움에도 불구하고 시인이 상대하는 것은 현실이 아니라 시인의 세계다. 자신이 쌓아 올린 헛된 망상과 착각을 상대하고 있는 것이다.

P.306 : 한 행을 쓰고 다음 행으로 넘어갈 때 물리적인 공백을 만들어 둠으로써 문장의 폭을, 사유의 폭을 넓힐 수가 있는 것이다. 한 편의 시를 들여다보며 눈을 떼지 않고 오래 생각한다면, 시인은 자신의 생각에 갇힐 수밖에 없다. 시인은 자신의 생각을, 사고를, 이해를 그대로 믿어서는 안된다. 시인은 전혀 특별한 존재가 아니며, 그저 범부에 가까울 뿐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사고는 대체로 거기서 거기며, 인간의 감정 또한 그러하다.

P.307 :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해 사고의 연쇄를 의식적으로라도 절단할 필요가 있다. 단절된 사고는 복수의 논리를 창출한다. 우리가 시의 미덕이라 말하는 행간이라거나 여백이라거나 하는 것은 사고의 연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단절이 창출해 내는 것이다. 사고의 연쇄로부터, 확정된 논리로부터 탈출함으로써 의미는 하나를 벗어난다.

P.308 : 나는 시에서 일상적 장면들을 일부러 소환한다. 일상적 통속성 사이에 숨겨진 예외들을 발견하기 위해서.

P.312 : 뛰어난 시는 하나의 관계를 둘 이상의 양상으로 중첩시킨다. 뛰어난 시에서 나타나는 관계성은 좋다거나 싫다거나, 기쁘다거나 슬프다거나,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는다. 하나의 관계에서 수많은 양상을 중첩함으로써 긍정과 부정 어느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는 복잡한 의미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시에서의 의미란 ‘나’와 대상이 서로 다른 두 존재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중요한 것은 ‘나’와 대상이 다르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이며, 그로부터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결정하는 것이 시인의 소임이다. 실제로 우리의 연애 관계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P.313 : 시를 쓰기 위해, 예술가가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역사에 대한 관점이며, 당대에 대한 행동 지침이다. 그것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정비 되지 않은 이가 유의미한 작품을 지속적으로 창출해내는 일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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