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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피터[이주의 시인]/손미 - 양파공동체 &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민음사 양파 공동체 시집 추천 : 손미 시인 - 컵의 회화

by 아주작은행성 2021. 8. 7.

손미 시인 / 믿음사 - 양파 공동체 수록

 

양파 공동체

2013년 제32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2009년 《문학사상》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손미 시인은 최근 활동하는 젊은 시인 가운데 놀랍고 신선한 자신만의 언어를 가진 시인으로 주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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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의 회화

 

한 번씩 스푼을 저으면

내 피가 돌고

 

그런 날, 안 보이는 테두리가 된다

토요일마다 투명한 동물로

 

씻어 엎으면

달의 이빨이 발등에 쏟아지고

 

난간을 따라 걷자

깊은 곳에서

녹색 방울이 튀어 오른다

살을 파고

모양을 그리면서

 

백지 위 젖은 발자국은

문고리가 된다

 

다른 몸으로 나갈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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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 속 스푼을 휘저으면

모여있는 형체는 일그러지고 바깥으로 밀려난다

거품은 테두리가 되고 거품의 안쪽은 더욱 깊은 아래로 쏟아지는 형국이 된다

 

절벽같은 테두리를 걸으면 깊은 아래쪽의 일렁임에서 무언가 분출되고 솟아오르는 것이 보인다

살을 뚫고 나오는 깊은 안쪽의 무언가.

용암처럼 뜨거워 보이는 유영의 물체

 

내 안을 다 휘저어서 내 속을 일그러트려도

나의 형체는 유지가 된다

 

나갈 수 없는 몸안에서

유영의 모습을 띄는 것은 

젖은 발자국 하나

 

물음표의 형상인지,

열쇠의 형상인지

내 것인지 모를

젖은 발자국

 

다른 내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이 보인다.

용암이 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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